[편집자주] 올해 1분기 기준 국내 매출 상위 500대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이 6.3%. 하지만 건설·부동산 업계의 여성 임원은 1.0% 수준에 불과하다. 시공능력 10대 건설사 중에서도 여성 임원이 없는 경우도 많고 있어도 아직은 1~2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는 그만큼 남성 중심적 문화가 지배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는 업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아직 손꼽히는 수준이긴 하지만 여성 임원과 대표가 곳곳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이들을 만나봤다. 그들이 생각하는 일은 무엇이고 어떻게 일을 하고 있을까.
“시장이 지금처럼 흔들릴 때 팔 사람은 팔지만 살 사람은 사요. 위기를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른 거죠. 사업하는 사람은 초긍정 마인드로 살아야해요. 저는 지금을 명확한 기회로 보고 세부 전략을 세워 나갈겁니다. 그동안 위기는 늘 기회였거든요.”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오스카앤컴퍼니 사무실에서 만난 장세미 대표의 성장 스토리는 ‘위기는 곧 기회’로 압축할 수 있다. 2001년 부동산 개발 회사인 신영에서 텔레마케팅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의 힘든 시간은 정규직 전환의 약이 됐다.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터져 상업시설개발팀에서 퇴사했을 땐 직접 회사를 차려 성장의 발판으로 삼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부동산 시장이 약세 전환하고 프롭테크 기업의 투자 상황이 어렵다는 지금을 장 대표는 기회로 보고 있다. 오프라인 관계를 기반으로 성장해온 회사를 이젠 온라인 상에서 상업용 부동산 회사와 고객을 연결시켜주는 프롭테크 회사로 확장시킬 계획이다. 회사 운영의 주 아이템인 ‘공간’을 매개로 공유 오피스와 공유 주거공간도 기획하고 있다.
장세미 대표는 상업용 부동산 중개·관리 시장의 마당발이다. 2009년 설립된 오스카앤컴퍼니는 지난해 강남구 역삼동 테헤란로에 들어선 ‘센터필드’의 임대대행을 맡으면서 크게 성장했다. 센터필드 웨스트타워 고층부에는 신세계그룹의 5성급 특급호텔 ‘조선팰리스 서울 강남’이 들어서있다. 그동안 업계에서 흔하지 않았던 호텔과 오피스가 한 건물에 있는 형태의 입점을 성공시킨 것이다.
ㅡ 부동산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사람 만나는 일을 좋아했다. 대학 때 부동산학과 공부를 하면서 실용적인 학문이라 생각했다. 공부한 내용을 살리고 싶었다. 첫 회사인 신영에 5~6번이나 지원한 이유다. 그런데 당시는 여성 인력이 인기가 없을 때였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했다. ‘콜드콜(사전에 접촉하지 않은 잠재 고객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유도하는 전화)’ 아르바이트다.
그때만 해도 ‘여자가 전화하면 덜 끊는다’고 했다. 3개월 있었는데 성과가 꽤 있었고, 계약직 인턴으로 전환됐다. 그리고 정규직으로 전환까지 이뤘다. 그 때 힘든 시간은 약으로 되돌아온다고 생각하게 됐다.
신영에 들어가서는 임대차 업무부터 시작했다. 강남 빌딩에 임차인을 모집하는 일을 했는데, 당시 한 층을 채우면 1억원 정도 매출을 낼 수 있었다. 열심히 했고 생각보다 성과가 좋았다.
이전까진 빌딩들이 대부분 사옥이었고 임대업무는 기업의 총무 담당자가 하곤 했다. 그러다 빌딩이 투자자산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아웃소싱 시장이 점점 커졌다. 그때 내 역량이 커졌다.”
ㅡ 창업은 어떻게 했나.
“회사를 그만두기 직전엔 상업시설을 개발하는 업무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2008년 리먼 사태가 터졌다. 금리가 오르면서 투자 시장이 완전히 얼어붙었다. 회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인원 감축 이야기가 나왔다. 완판(모두 판매), 1등… 희로애락을 다 느끼게 해 준 회사였지만, 나가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신영에 함께 있던 후배와 의기투합했다. 결혼과 임신, 출산, 퇴사까지 비슷하게 했던 후배가 자산관리업무를 배워보고 싶다고 했다. 후배에게 내가 해왔던 일들을 하나씩 가르쳐 주겠다는 마음으로 창업을 했다.
처음엔 청담동 신축 건설현장의 임시현장 사무실을 회사 사무실로 썼다. 회사 안에만 있다가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온 것 같은 신나고 묘한 느낌을 잊을 수 없다. 기업형 슈퍼마켓 자리를 찾아주는 일이 첫 업무였다. 슈퍼 오픈 후 예상했던 매출보다 두배 이상이라는 얘기를 듣고 매우 기뻤던 기억이 있다.”
ㅡ 금융위기 직후라 쉽지 않았을텐데.
“욕심 내지 않았다. 내가 일을 하는 동안 어머님이 아이를 봐주셨는데, 어머님에게 용돈을 드릴 수 있는 정도로만 회사를 운영하자고 했다. 대신 기회가 오면 그건 반드시 잡았다.
건물 관리를 하면서 의뢰인이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지 못할 때는 수수료도 그만큼 낮췄다. 그런 일이 쌓이고, 입소문을 타면서 고객의 건너, 또 그 고객의 건너건너가 찾아준 것이 밑거름이 됐다.”
ㅡ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지금은 관정빌딩이 된 예전 서린빌딩 매각을 추진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매수자 한 사람 매도자 한 사람간의 계약을 성사시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다. 워낙 큰 돈이 들어가고 그 사이에 의견을 조율해야할 일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빌딩은 구분소유로 돼 있어 여러 매도자와 동시에 매매계약을 체결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주요 사안을 둘러싼 이견이 꽤나 첨예해 의견 합치가 어려웠는데, 특히 한국화장품과 한국개발금융이 동시에 계약하도록 하는 상황이 쉽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빠르게 매입 의사결정을 이끌어 낸 끝에 성공적으로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자부심도 생겼다. 사업의 근간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어떻게 조율해야 하는지 노하우가 생겼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도 생겼다.”
ㅡ 가장 자랑하고 싶은 사업은.
“작년에 했던 역삼동 센터필드 임대대행이다. 그동안 수많은 일을 해왔지만 회사가 작은 규모에서 볼륨감 있게 커질 수 있었던 건 큰 프로젝트를 잘 수행해 낸 경험 덕분이다.
준공 1년 전에 들어갔는데, 당시만해도 오피스 시장이 활황이 아니었다. 임대가격을 최고로 받아 채울 수 있을까, 빌딩이 반만 채워져도 잘 된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이 있을 때였다. 하지만 그 때 결국 잘 해냈다. 센터필드 준공 당시엔 공실 없이 모두 채워져 있었다.
센터필드는 호텔과 오피스가 한 건물에 들어있다. 일반적으로 이런 형태는 호텔 투숙객이 출근한 직장인들과 마주칠 수 있어 불편해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입주사들을 설득시키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막상 입점시켜보니 입주사들의 반응도, 시너지도 좋았다. 역발상이 효과를 거뒀다. 입주사 입장에서는 고객에게 가까우면서도 최고급인 숙소를 제공하면서 좋은 음식과 차를 마시고 접대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직원들의 복리후생에 도움이 되는 효과까지 있다고 하니 앞으론 호텔과 오피스가 함께 있는 사례가 점점 많아질 것이다.”
ㅡ 프롭테크로 사업을 확장했다.
“프롭테크를 기반으로 상업용 건물 관리에 나서는 테크 기업을 보면서 위기감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 회사는 이미 오프라인에서 단단히 다져왔고 이를 온라인으로 확장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객 접점을 넓혀가는 하나의 툴로 접근하다보니 부담이 덜했다.
그동안 부동산 개발 업계에서는 직접 찾아가는 미팅이 주로 이뤄졌다. 이제는 담당자가 먼저 회사를 검색해보고 실적도 비교해보면서 온라인으로 바로 연결이 가능한 플랫폼을 기획하고 있다.
이를 좋게 봐주고 투자도 나서겠다는 분도 있었다. 상업용 건물에 강점이 있다보니 공유오피스 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늘 공간에 대해 고민한다. 그 만큼 공간에 대해 잘 아는 회사다. 이태원 등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곳에 자리잡은 공유 오피스는 시장에서 반응이 있으리라고 본다. 잘 노는 사람들이 일도 잘 한다고 하지 않나.”
ㅡ 부동산 개발업계에 유리천장이 있다고 보나.
“일할 때 실제로 ‘이런 일은 노련한 남자분이 와야지’하는 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 의사결정이 빨라야 하는데, 여성이 그렇게 대범할 수 있겠냐는 우려도 들었다. 다 선입견이다.
남성이나 여성,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일에 책임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보는 건물 관리인 아저씨들을 설득해 관리소장을 만나고, 문전박대 당할 땐 관리소장을 만나기 위해 온 지하층을 돌아다니는 일들. 해내겠다고 생각하면 그 다음부터 성별이나 그런 건 어느 순간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게 내 생각이다.”